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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은 내 맘에 가득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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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매화꽃이야기' woodcut 24*30cm
작품을 하는 것은 곧 자신의 거울 앞에 서는 일이다.
예술가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작품을 통해 숨김없이 전달한다.
따라서 작품을 본다는 것은 그 영혼을 만나는 것과 같으며, 실제로 그림을 보면 베일에 가려졌던 내면이 자신의 나상(裸像)을 드러낸다.
이효임씨의 작업은 자신의 내면을 물상에 투영하여 나타낸다.
말이 작업이지 자신의 속마음을 천하에 고백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직접 드러내는 것이 쑥스러울 때는 간접적으로 전달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직접화법을 이용하는 편이다.
그의 작업은 소실점처럼 하나의 지점으로 모아진다.
처음에는 초점이 흐트러지다가 어느 한 지점에 오면 정지되어 온통 시선이 거기에 쏠리게 된다.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가 공연되는 극장이라는 관점 하에 피조계는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통로로 간주된다. 가정 안에서, 학교,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느낀 것들을 작품의 소재로 삼고, 경험한 은혜의 내역을 그때그때 작업에 새겨 넣는다. 그에게 그림은 생활의 기록이요 영혼의 고백이자 영광의 찬미가 된다. 마음속에 고요히 흐르던 은혜가 생활 속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작품이란 통로를 경유하여 바깥으로 흘러나온 셈이다. 영혼의 눈으로 조망한 풍경은 아름답고 눈부시다. 우리가 까마득히 잃어버린 것들이 그 속에 있다.
그가 즐겨 구사하는 판화기법은 목판으로 주로 베니어판을 이용하여 제작된다. 모든 판을 조각도로 파서 만들고 그 다음 색깔을 입히는데 판(板)을 정확히 맞추지 않으며 포커스가 틀려져 형태가 맞지 않거나 원하는 색상을 얻지 못하게 된다. 판화 한 점을 완성하는데 필요한 수십 판이 조금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핀트가 맞아야 한다. 그래야 또렷한 윤곽과 오묘한 색상의 묘미를 자아낼 수 있다. 그만큼 목판기법은 자로 잰 듯한 정확성을 요한다. 대단한 인내력과 정교함 없이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작업의 특성을 갖고 있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니까 일반 작품과 달리 판화작품을 감상할 때면 더 조심스럽게 관찰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작가의 예술적 면모를 짐작할 수 있는 몇 점의 작품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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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바다' 2006 woodcut 혼합기법
<은혜의 바다>(2006)는 바다를 적시는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묘출한 작품이다. 노을에 물든 저녁 무렵의 한 외진 바닷가의 풍경을 묘출한 것인데 장대비가 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섬까지 비가 쏟아지고 있다. 한낮의 땡볕 대신 시원한 단비가 수면을 적신다.
여기서 단비를 단지 빗방울을 의미할 이유는 없다. 셰익스피어가 자비를 "하늘에서 내리는 촉촉한 비"라고 묘사한 것처럼, 이효임씨에게 있어 비는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자비, 기적의 샘 같은 용서와 깊은 우울처럼 마르지 않는 한결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한다. 마른 땅 같은 마음을 실록으로 뒤덮인 상태로 바꾸는 하늘의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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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가는 길, 오는 길>(2002)은 별들의 축제를 묘출하였다. 하늘에는 별들이 꽃처럼 피어있다. 빨갛고 노랗고 파랗게 생긴 별들이 밤하늘을 환히 밝히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이 작품 밑에 작가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하늘에 꽃잎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오는 길에도 그 꽃들은 여전히 내 맘에 가득했다. 날아갈 듯이 기쁜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아쉽게 이 작품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 그 감격의 절정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은 어찌나 크고 넓은지,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 일어난 일에 비할 수 없다. 생의 회복과 충만, 그리고 거룩한 달콤함으로 밤을 꼬박 새웠다.
이 작품은 별들이 우리를 환영하고 있는 것처럼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전해준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오아시스같이 작가는 하나님에게서 아무리 사용해도 바닥을 보이지 않는 기쁨과 희열을 공급받는다. 그 경천동지의 사건에 접속된 작품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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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정원-Iris-06' woodcut
<아버지의 정원>(2006)은 꽃밭에 군락을 이룬 아이리스를 묘출하였다. 활짝 핀 아이리스는 일제히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있다. 크고 작은 것들도 있지만 각자 꽃 봉우리를 터뜨려 자신의 충천한 사기, 그 기쁨의 성향을 뽐내고 있다.
그런데 왜 작가는 <아버지의 정원>을 제목으로 달았을까. 그것은 아마 그 꽃들을 돌보시고 지키시고 자라게 하시는 분을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정원의 주인이신 아버지는 씨앗을 뿌릴 때부터 씨앗이 캄캄한 흙을 헤치고 나와 초록빛 새순이 올라오던 무렵, 그리고 무럭무럭 자라 꽃을 활짝 필 때까지 돌보시고 양분을 공급하신 분이다. 그 분이 없었다면 지금의 꽃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보는 꽃은 단순히 예쁜 꽃이 아니라 주인의 극진한 배려와 사랑으로 맺어진 결실이다. '아버지의 정원'에 주목하는 것은 따라서 뿌리에 주목하는 것이요 나를 키워주신 분에게 주목하는 것과 같다.
이효임씨의 작품은 풍경이되 보통 풍경화가 아니다. 심의(深意)가 잇대어진 풍경화요 더 구체적으로는 '은혜가 덧입혀진 풍경화'라고 할 수 있다. 은혜의 바다에서 믿음의 그물로 진리의 아름다움을 건져 올린다. 그물을 올릴 때마다 '회복'과 '충만' 그리고 '거룩한 달콤함'을 수확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가 오늘도 그물을 내리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작가는 은혜의 바다에서 깊은 휴식인 평안을, 모호한 속에서 통찰력을, 한없는 성취를 찾아간다. 그리하여 모든 지평선을 넘어, 경계도 없고 여행으로도 찾을 수 없는 가만히 서 있어야 찾을 수 있는 세계의 심연 속에 거하며 영원한 자유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서성록(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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